L2간 생태계 및 유동성 파편화, 울트라사운드 머니(ultrasound money) 내러티브 약화 등의 이유도 있지만, 이더리움이 침체기에 빠진 근본 원인은 사용자 및 빌더가 소외되는 내부 문화와 재단 리더십의 분열이다.
라이도(Lido) 같은 성공적 스테이킹 솔루션마저 배척하고, 일반 사용자나 디젠 트레이딩을 폄하하는 엘리트주의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이더리움 생태계의 개방성과 유연성이 훼손되고 있다.
이더리움 재단이 거버넌스를 투명화하고, 사용자와 빌더 중심의 철학을 다시 견지해야만 경쟁 체인에 빼앗긴 모멘텀을 되찾고 장기적으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
이더리움은 현재 침체기에 빠져 있다. 최근 1년 동안 $ETH 보유자들은 낮은 수익률에 실망했고, 반면 솔라나나 수이, 하이퍼리퀴드 등 경쟁 체인들은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해 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L2로의 가치 유출, L2간 생태계 및 유동성 파편화, EIP-4844로 인해 소각량이 둔화된 점 등을 지적하지만,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원인은 이더리움 내부의 문화적, 정치적 문제다.
“다들 $ETH 가격 부진의 이유를 복잡하게 해석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이더리움 리더십과 문화가 앱 레이어에 적대감을 보이면서 사용자와 빌더를 소외시킨 데 있다”고 뱅크리스(Bankless) 코파운더 데이비드 호프만(David Hoffman)이 말한다. 또 다른 베테랑 커뮤니티 일원인 사차 생레제(Sacha Saint-Léger)도 “연구만 과도하게 숭배하고 엔지니어링을 경시하면 결국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이더리움이 사용자와 빌더 중심이었던 본래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이는 가격 하락과 성장 동력 약화로 직결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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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이더리움이 경쟁 알트 L1과 비교해 동력을 잃은 이유 중 하나로 “이론 모드(theory mode)”에 갇힌 채 산발적 실행과 불투명한 로드맵을 반복했다는 점이 거론된다. 한때 이더리움 진영에서 밀어붙였던 울트라사운드 머니(ultrasound money) 내러티브도 L2가 L1 트랜잭션을 흡수하면서 수수료와 소각량이 줄어들자 설득력을 잃어갔다.
이러한 침체의 중심에는 리더십 공백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이더리움 재단(Ethereum Foundation, EF)이 체인의 개발 방향성과 내러티브를 주도했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방향성이 모호하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투자자들도 이를 간파해 더 빠르고 사용자 친화적인 대안 체인을 지지하는 모습이 뚜렷해졌으며, 한때 빌더들이 가장 사랑하던 이더리움은 이제 더 빠르고 사용자 친화적인 경쟁 체인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모멘텀이 급격히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F은 내부 비판과 감시에 직면해 있다. 이더리움 코파운더 조 루빈(Joe Lubin)은 이더리움 재단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탈중앙을 지향한다는 명분과 달리, 비탈릭(Vitalik)은 EF 리더십을 “적절한 이사회가 생길 때까지 본인이 직접 고른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공개된 프로세스도, 검증 기준도, 이사회 구성 시점도 불확실함을 의미하며, 실제로는 중앙집중형 권력이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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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재단이 과거에는 연구개발, 급여, 보조금 등을 연간 보고서로 투명하게 공개했지만, 최근에는 불규칙한 블로그 글이나 분기별 보조금 데이터만 발표할 뿐, 2023년에는 통합적‧감사된 지출 내역을 건너뛰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이는 재단이 ETH 물량을 몰래 매도한다는 의혹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더리움 재단 디렉터 아야 미야구치(Aya Miyaguchi)가 사임 후 회장(President) 역할을 맡는다고 발표하는 등 리더십 교체 역시 커뮤니티에는 미봉책 정도로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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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저스틴 드레이크(Justin Drake), 단크라트 페이스트(Dankrad Feist), 대니 라이언(Danny Ryan) 같은 핵심 연구자들이 트위터에서 서로 상충되는 발언을 내놓으며 L1 사용, 디플레이션 매커니즘, 확장성 로드맵 등에 서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조 루빈은 “커뮤니티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EF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누가 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L1 리텐션, L2와의 시너지 확보, 브랜드 전략 등 긴급 과제를 EF가 해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배타적인 문화도 이더리움 생태계가 흔들리는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예컨대 데이비드 호프만은 “라이도(Lido)는 이더리움 최고의 스테이킹 서비스인데도, 오히려 배척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앙화 리스크를 이유로 라이도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실제로는 너무 성공하면 역풍을 맞는다는 식의 메시지를 빌더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더리움 핵심 인사들이 밈코인이나 디젠 트레이딩 같은 활동을 저급하다고 폄하하거나, “L1은 일반 사용자를 위한 곳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이더리움 생태계가 사용자 및 빌더들과의 괴리를 키우고 있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사차 생레제는 “이더리움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불량 피드백 루프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고, dataalways.eth도 커뮤니티가 이론적 우아함에 집착할 뿐 사용자 요구는 등한시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문화적 배타성과 리더십 혼란이 겹치면서 투자자와 빌더들의 신뢰도 또한 급격히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이더리움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자금을 회수하고, 빌더들 역시 “L1을 써야 할지, L2를 써야 할지도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신규 프로젝트 채택을 망설이는 분위기가 생겼다. 심지어 이더리움의 핵심 디파이 프로젝트로 꼽히던 스카이(구 MakerDAO)가 솔라나 기반 코드를 검토한다는 소식은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트레이더들은 재단이 일관된 내러티브를 조율하지 못하니 $ETH 가격 모멘텀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일반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이더리움 메인넷은 복잡하고 수수료가 높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안 체인으로 이탈하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결국, 문화적 침체와 리더십 공백이 맞물리면서 이더리움이 쌓아 올린 유동성·개발자 풀·사용자층이 다른 체인들에게 잠식당하고, 투자자들 역시 더욱 회의적 시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더리움이 이렇게 흔들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술 낙후가 아니라, 사용자 및 빌더 중심 철학에서 벗어나 그들의 요구를 경시하고, 재단 리더십까지 분열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연구 성과가 있어도 EF의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내부 권력 갈등만 이어진다면, 글로벌 디파이와 NFT, 웹3 허브로 자리매김하려 했던 본래 목표가 무색해질 위험이 있다. 다만 이더리움이 개발자 역량, 자본, 브랜드 파워 등 기반 자산을 여전히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시간을 끌지 않고 엘리트주의를 버리고 거버넌스를 투명화하며 유저및 빌더들을 다시 포용해야만 이 침체 국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